관월당 100년 만에 일본에서 한국으로 귀환
조선시대 왕실 사당 건축물로 추정되는 관월당이 약 100년 만에 일본에서 국내로 돌아오게 되었다. 관월당은 원래 한국에서 출발했지만, 여러 역사의 연유로 일본으로 옮겨졌다가 드디어 다시 한국 땅을 밟게 됐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은 지난 23일 일본의 고덕원과 양도 협약을 맺고 관월당을 국내로 옮기는 과정을 공식화했다고 밝혔다.
관월당의 역사와 건축적 가치
관월당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조선 후기 왕실 사당 양식을 갖춘 목조 건축물이다. 맞배지붕 단층 구조로 지어졌으며 서울 지역에 있었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건축물은 1924년 조선식산은행에 의해 일본으로 반출되었고, 이후 가마쿠라시의 고덕원 사찰에 위치하게 되었다.
왕실과 관련된 건물로 관월당의 건축학적 특징은 대군급 왕실 사당 규모에 해당하며, 궁궐과 궁가 건축에서 나타나는 다양한 의장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사용된 기와에는 용문, 거미문 등 왕실을 상징하는 문양이 있다. 단청 또한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후반 사이에 다시 채색이 이루어져 다양한 층위의 화려한 문양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해체된 당시 발견된 건축 관련 자료가 부족하여 원래의 명칭이나 조선에서의 위치 등은 앞으로도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일본으로 옮겨진 후 일부 양식과 구조가 변화되었고, 이는 한국에 돌아온 지금, 복원을 위한 자료로 활용될 예정이다.
귀환을 위한 한일 협력
관월당의 귀환은 고덕원의 사토 다카오 주지의 진정성 있는 협력과 한국의 지속적인 노력 덕분에 성사될 수 있었다. 사토 주지는 해체와 운송의 제반 비용을 자비로 부담하며, 한일 양국의 공동 협력 프로젝트를 통해 관월당의 역사적 가치를 재조명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재단은 관월당을 보존하기 위한 연구와 정밀실측, 보존처리 등을 진행하며 한국 전통 건축 전문가들의 참여를 바탕으로 공동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이는 한일 양국이 문화유산을 매개로 상호 존중과 공감의 가치를 실현한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받고 있다.
관월당은 관음보살상을 봉안한 기도처로 사용되었으며, 그 가치를 계속 이어가고자 하는 두 나라의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특히 해체와 운송 과정에서의 사토 주지의 적극적인 협조로 인해 복원의 과정이 한층 더 수월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관월당의 미래 계획과 보존
현재 관월당의 부재는 파주에 위치한 전통건축수리기술진흥재단 수장고에 보관돼 있으며, 전문 인력들에 의해 체계적인 수리 작업이 진행되고 있다. 국가유산청과 국외재단은 관월당의 원래 명칭과 원 위치, 배향 인물 등을 밝히기 위한 학술 연구를 지속하고 있다.
앞으로 관월당은 국민 누구나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보존과 활용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고덕원 또한 한일 양국 간 문화유산에 대한 학술 교류를 지속적으로 지원하기 위한 기금을 마련하여 국외재단에 기부할 예정이다.
관월당의 귀환은 양국의 문화적 연대와 협력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할 예정이며, 이는 관월당의 본래의 가치를 한국 내 적절한 장소에서 회복하기 위한 중요한 시작점이다. 이러한 노력은 관월당의 역사적 의미와 가치를 온전히 되찾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이다.
Conclusion
관월당의 100년 만의 귀환은 단순한 문화재의 회복이 아니다. 이는 한일 양국의 깊은 협력을 통해 이루어진 상징적 사건으로, 문화유산을 되찾고 지켜나가는 과정에서의 협력이 어떻게 발전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토 다카오 주지와 한국 전문가들의 노력 덕분에, 과거 조선의 건축미가 한국의 공기 속에서 다시 숨 쉬게 되었다.
앞으로 관월당은 그 본래의 가치를 회복하기 위한 다양한 학술적 연구와 복원 프로젝트를 통해 세계적으로도 그 중요성을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미지의 역사적 사실을 밝히기 위한 지속적인 연구는 물론 국민들에게 그 가치를 공유할 수 있는 창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이로써 관월당의 귀환이 장기적인 한일 문화 교류의 중요성을 다시금 상기시켰으며, 더 나아가 문화유산 보존이라는 공통 목표를 위한 협력의 밑거름이 될 것이다. 문화유산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고 존중하는 한일 관계를 더욱 발전시키는 데 기여할 것이다.